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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사진 교실
2011.11.2~23 매주(수) 오전10:30, 총4회 30 명
노무현재단 6층 대회의실 50,000 원 ( 후원회원 수강료 : 40,000원 )
이메일(rohschool@gmail.com) 2011년 11월 02일(월)까지 선착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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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노무현과 다섯 컷의 풍경’
- 사진기자 때 반해 청와대 전속으로…공식 행사와 사적인 일정 등 50만컷 촬영
장철영 코픽스 대표는 ‘찍사’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만원을 주고 산 마이크로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후로 사진기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대학을 가기 전에 몇 년간 건설업에 종사할 때도, 심지어 군에서도. 그는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늦깎이로 대학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에게 사진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짧은 답이 돌아왔다. “사랑한다! 진짜.”
그런 그에게 사진만큼 중요한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다. 그는 사진기자로서 정당을 출입하며 만난 노 후보에게 반했다.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서울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부산으로 내려가 결국 낙선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 들었던 “제 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나중에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호감으로 바뀌었다.
대통령후보 시절에는 “저런 사람이 꼭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권양숙 여사를 촬영할 기회도 몇 차례 있었는데, 노 대통령 내외가 두 분 다 소박하고 소탈해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대통령님, 속이 보이게 웃어주십시오”
2003년 11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청와대 비서실 사진 전속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바로 7년차 사진기자 생활을 접었다.
그때부터 대통령 내외분을 찍었다. 주로 공식 행사가 많았지만, 여행 같은 사적인 일정도 있었다. 대통령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찍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보여주는 모습뿐만이 아니라 사적이고 인간적인 기록도 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역대 대통령이 비공개 일정을 사진으로 찍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는 직접 제안서를 만들어서 부속실에 올렸다.
“대통령에 대한 사적인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게 기록이고, 역사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 대통령의 진실된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그의 꾸준한 설득이 먹혔는지 경호실과 외교부에 장철영 대표가 사진을 찍을 때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가 내려갔다.
그는 청와대에서 50만 컷 가량의 사진을 찍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식사를 아예 거르고 신들린 듯 정신없이 셔터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그가 ‘전속 찍사’로서 노 대통령께서 사진에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연출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사진에 관한한 ‘전속 찍사’를 믿고 맡겼다고. 한 번은 단체사진 촬영을 하는데, 다들 표정들이 너무 굳어있었다. 장 대표는 환한 표정을 담기 위해 대담하게 노 대통령에게 “속이 보이게 웃어주십시오”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렇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이 때 노 대통령이 나섰다. “저 놈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놈 중의 한 놈입니다.” 웃음꽃이 터졌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장 대표의 카메라에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셔터가 열렸다 닫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외국을 방문해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노 대통령께서 중앙이 아니라 한 쪽에 서계신 상태가 됐다. 경호실장이 대통령께서 중앙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 있는 순서를 바꾸려고 했다. 그 때 노 대통령께서는 “괜찮습니다. 대통령이라고 꼭 중앙에 가야 할 필요가 있나요. 프로가 하자는 대로 찍죠”라며 원래 구도대로 찍게 했다.
‘대통령 찍사’가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의 모습
장철영 대표가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노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분위기는 항상 권력자에겐 강단 있고 약자에겐 더욱 더 고개를 숙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청와대에서 대선 당시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에 나섰다 선거법 위반으로 몰려 기소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 때 노 대통령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보였다.
“누구처럼 가식적인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지만, 자신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을 보며 제 마음도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그런 대통령 내외분을 모실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의 주요 일정에선 항상 그림자처럼 사진기를 든 그가 따라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거 후에도 그의 동선은 바뀌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관련한 행사나 일정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 물론 자원봉사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같은 답이 돌아온다. “노 대통령님과 관련한 일을 하는 건 언제나 영광입니다.”
하반기에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를 다양화하며 사진교실을 부탁했다. 그의 대답은 거침없고 시원했다. “재단에서 필요하면 해야죠. 뭘 하면 됩니까?” ‘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사진교실은 11월 2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총 4회로 진행한다.
[입문] ‘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사진 교실
2011.11.2~23 매주(수) 오전10:30, 총4회 30 명
노무현재단 6층 대회의실 50,000 원 ( 후원회원 수강료 : 40,000원 )
이메일(rohschool@gmail.com) 2011년 11월 02일(월)까지 선착순 마감
http://www.knowhow.or.kr/bongha_inform/view.php?start=0&pri_no=9995...
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노무현과 다섯 컷의 풍경’
- 사진기자 때 반해 청와대 전속으로…공식 행사와 사적인 일정 등 50만컷 촬영
장철영 코픽스 대표는 ‘찍사’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만원을 주고 산 마이크로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후로 사진기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대학을 가기 전에 몇 년간 건설업에 종사할 때도, 심지어 군에서도. 그는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늦깎이로 대학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에게 사진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짧은 답이 돌아왔다. “사랑한다! 진짜.”
그런 그에게 사진만큼 중요한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다. 그는 사진기자로서 정당을 출입하며 만난 노 후보에게 반했다.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서울을 마다하고 우직하게 부산으로 내려가 결국 낙선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 들었던 “제 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나중에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호감으로 바뀌었다.
대통령후보 시절에는 “저런 사람이 꼭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권양숙 여사를 촬영할 기회도 몇 차례 있었는데, 노 대통령 내외가 두 분 다 소박하고 소탈해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대통령님, 속이 보이게 웃어주십시오”
2003년 11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청와대 비서실 사진 전속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바로 7년차 사진기자 생활을 접었다.
그때부터 대통령 내외분을 찍었다. 주로 공식 행사가 많았지만, 여행 같은 사적인 일정도 있었다. 대통령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찍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보여주는 모습뿐만이 아니라 사적이고 인간적인 기록도 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역대 대통령이 비공개 일정을 사진으로 찍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는 직접 제안서를 만들어서 부속실에 올렸다.
“대통령에 대한 사적인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게 기록이고, 역사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 대통령의 진실된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그의 꾸준한 설득이 먹혔는지 경호실과 외교부에 장철영 대표가 사진을 찍을 때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가 내려갔다.
그는 청와대에서 50만 컷 가량의 사진을 찍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식사를 아예 거르고 신들린 듯 정신없이 셔터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그가 ‘전속 찍사’로서 노 대통령께서 사진에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연출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사진에 관한한 ‘전속 찍사’를 믿고 맡겼다고. 한 번은 단체사진 촬영을 하는데, 다들 표정들이 너무 굳어있었다. 장 대표는 환한 표정을 담기 위해 대담하게 노 대통령에게 “속이 보이게 웃어주십시오”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렇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이 때 노 대통령이 나섰다. “저 놈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놈 중의 한 놈입니다.” 웃음꽃이 터졌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장 대표의 카메라에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셔터가 열렸다 닫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외국을 방문해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노 대통령께서 중앙이 아니라 한 쪽에 서계신 상태가 됐다. 경호실장이 대통령께서 중앙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 있는 순서를 바꾸려고 했다. 그 때 노 대통령께서는 “괜찮습니다. 대통령이라고 꼭 중앙에 가야 할 필요가 있나요. 프로가 하자는 대로 찍죠”라며 원래 구도대로 찍게 했다.
‘대통령 찍사’가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의 모습
장철영 대표가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노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분위기는 항상 권력자에겐 강단 있고 약자에겐 더욱 더 고개를 숙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청와대에서 대선 당시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에 나섰다 선거법 위반으로 몰려 기소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 때 노 대통령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보였다.
“누구처럼 가식적인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지만, 자신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을 보며 제 마음도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그런 대통령 내외분을 모실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의 주요 일정에선 항상 그림자처럼 사진기를 든 그가 따라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거 후에도 그의 동선은 바뀌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관련한 행사나 일정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 물론 자원봉사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같은 답이 돌아온다. “노 대통령님과 관련한 일을 하는 건 언제나 영광입니다.”
하반기에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를 다양화하며 사진교실을 부탁했다. 그의 대답은 거침없고 시원했다. “재단에서 필요하면 해야죠. 뭘 하면 됩니까?” ‘대통령 찍사’ 장철영의 사진교실은 11월 2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총 4회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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