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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자유

[2010.4.4] 남풍은 절망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슬슬 바깥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자전거 타는 이들도 같은 마음이어서 자전거를 탈 요량으로 나가게 됩니다.

맞닥뜨리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황사와 바람입니다.

황사는 길지 않고 옅을 때는 버프나 마스크로 극복한다지만

바람은 꽤나 힘들게 합니다.

더군다나 중장거리를 타려고 하면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 바람과 내가 존재한다면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어제 시골에 갔습니다.

온양온천역까지 전철을 타고 갑니다.

안양역에서 탔는데 다행히 승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금정역 쯤에서인가 아주머니 두 분이 타시는데 그 중 한 분의

수다가 영 거북스럽습니다.

자전거만 아니면 다른 칸으로 갔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빨리 내리기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 내리는군요.

결국 온양온천역에서 같이 내렸습니다. 12시 40분쯤.

왠지 억울하고 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듭니다.

온양까지 전철이 운행되고 나서 수도권 노인들께 온양이 하루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전철이용료 무료에 온천욕 즐기고 밥 한끼 드시고 올라오는 놀이.


전철역을 나와 39번 도로를 찾아갑니다.

이 도로는 의정부에서 시작하여 부여의 은산까지 이어지는 도로입니다.

39번 도로에 올라서는데 그 전의 도로가 아닙니다.

길이 더 넓어지고 차량도 늘었습니다.

조금 가니 언덕이 나오는데 건너편에서 자전거 탄 이들 셋이 내려 옵니다.

초반이니까 언덕은 가볍게 오릅니다.

바람은 있지만 부담될 정도는 아닙니다.

조금 덮네요.

집까지 쉬지 않고 가렸더니 웃옷 하나 벗고 가야겠습니다.


다시 출발.

그런데 바람이 세졌습니다.

부담됩니다.

기어를 내립니다.

외암마을 표지판이 보이고 광덕산 표지판도 보입니다.

몇 년 전의 기억에 광덕산 임도도 탈만합니다.

건너편에 열 명 정도 자전거 타는 이들이 보입니다.


바람은 쉬지 않습니다.

이럴 바에야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낫겠습니다.

오르막은 빠른 속도를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차 뒤에 자전거 두 대를 매단 차가 지나갑니다.


얼마 쯤 가니 같은 방향으로 4명의 자전거 탄 이들이 보입니다.

그냥 지나쳐 갑니다.

예로부터 한방은 어렵다더니 오늘 한방은 안 되겠습니다.

어디선가 쉬어야겠습니다.

가다 보니 오른편 길옆 식당에 자전거 10여 대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자전거 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몇 년 전에 이 길을 지날 때는 한 대도 못 보았는데 오늘은 몇 십대를 봅니다.

몇 년 전 이 곳을 지날 때 할머니 한 분이 앞에 계실지도 모르는 동료 할머니에게

말을 전해주라는 부탁을 하셨었던 기억이 납니다.


60 세 전후로 보이는 비구니 한 분이 걷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속으로 묻습니다.

' 저는 안양에서 부여까지 가는데...'


유구면내를 지나갑니다.

면내에서 조금 지나가면 도로 옆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 휴식합니다.

20km 중반 달려 온 듯 합니다.

물을 떠서 마시고 삶아 온 계란 두 개를 먹습니다.

등산객들도 물을 마십니다.


이 때 시간이 2시10분 쯤. 꽤 많이 걸렸습니다.

남은 거리 40km 쯤.

4시 안에 도착할 듯 하긴 한데....


그 전에 이 곳을 달릴 때 힘이 들었는지 이후부터는 길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바람에 맞서다 탈진할까 염려되어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어쨌든 패달을 돌리다 보니 정산입니다.

면내에서 따뜻한 국수라도 한 그릇 하고 가야겠습니다.

그런데 간판은 많이 보이는데 영업하는 식당도 많지 않고

식당이 모두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밥 먹는 모습을 모르는 남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을.

옛날 식당들은 대개 안팎이 서로 보이지 않았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밥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리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도 저는 지금 자전거를 눈 밖에 둘 수가 없습니다.

작은 면내를 두 바퀴 돌고서야 체념하고 자전거를 밖에 세우기로 합니다.

자물쇠는 있으니...

정산 출신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니네 동네 왔다고..."


요 때 시간이 3시10분 쯤이었습니다.

맛있는 칼국수였습니다.


다시 출발.

밥을 먹었더니 힘이 조금 납니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입니다.

확 오를까 하다가 위가 시위할까봐 가볍게 오릅니다.

1km 정도의 오르막인데 경사도도 적당하고 훈련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더 가니 익숙한 마을이 보입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다니던 마을입니다.

백마강변을 따라 소풍을 다녔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힘을 아끼지 않습니다.

맞바람에 전력으로 맞섭니다.

얕은 오르막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드디어 집 앞에 도착.

모자를 눌러 쓰고 쑥을 뜯고 계신 분도 있네요.

아는 분들이 보입니다.

몇 마디를 나누는데 쑥을 뜯고 계신 분이 어머니였습니다.

위장을 하시다니...